오늘은 13주의 서막이 열린 날.
12주를 돌아보며 간만에 글을 써본다.
입덧하던 극초기에 비해 정말 많이 힘들었던 12주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사실 여러모로 신경쓰일만한 사건들도 있었긴 했다.
일단은 층간소음문제... 오전 10시, 점심시간, 저녁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북-북-'의자 긁히는 소리.
나는 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제일 먼저 윗집으로 갔었다.
윗집 문엔 '개인과외신고자' 란 표지가 붙어있었다. 10시 좀 넘어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문을 안열어주었다.
분명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데, 지금 일부러 안나오는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저녁 시간에 또 의자 소리가 들려 내려가보니, 주인이 나와서 굉장히 조심스럽고, 미안해하는 자세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 다음날인가 밤에 윗집 주인이 찾아와서 소음이 좀 나아졌냐고 물으러 왔다. 나는 별 차이를 못느꼈지만 찾아와주는게 고맙기도 하고해서 어물쩡 좀 나아진거 같다고...
그러다가 나도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까 마음이 좀 편해져셔,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하면서 머리 속에 품었던 나 혼자만의 상상.. 개인과외 신고해놓고, 학원처럼 운영하는 불법적인 일을 아닌가 하는.. 그래서 의자 소리가 그렇게 요란하게 나나 하며, (그날 문 안열어준 것도 수상하고) 왜 오전마다 그렇게 시끄러운 것이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그러자, 주인분이 하는 말이...
자기는 이곳을 수업하는 용도로만 사용한다며 오후 늦게 이곳에 온다고 했다...
앗 이런 그렇다면 소음의 진원지는 이곳이 아니란 말인가?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나는 소리가 나는 시간마다
아랫집... 정확히는 아랫집이 아니라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 의자 소리가 나는지 확인했다.
식당들은 마침 영업을 앞두고 한참 청소 중이었다.
나는 상황을 이야기하며, 한집 한집 들어가 의자를 밀어보았다.
딱 한집, 그러니까 바로 우리집 아래집이 그 '북-.북'하던 소음이 났다.
마침 사장이 없어, 나는 직원에게 꼭 좀 상황 전해주고 뭔가 조치 좀 취해달라고..
내가 임산부고,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는 점을 일러두었다.
4-5일이 지나고 소리는 여전했고, 나는 전화를 걸어 사장 전화번호를 받았다.
전에 층간소음문제로 한번 방문했던 사람인데, 직원한테 이야기를 들었냐고 하니...
그 얘길 전해듣긴 했는데, 자기는 '참 별 사람 다 있네'싶었다고 했다.
이 식당 사장은 케릭터가 참 특이한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런 얘길 바로 당사자 앞에서 하다니...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그럼 그 얘길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거냐 물으니, '그렇다'라고. 참 이걸 솔직하다 해야하나?...
너무 내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아 다시 차근 차근 매일 정해진 시간에 들려오는 의자 긁는 소리를 다시 소개해주고, 내가 이걸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니,
또 한다는 소리가 어떻게 자기네가 밑에 층인데도, 게다가 식당이라 중간에 틈이 있는데도 그 소리가 들릴 수 있냐는 거였다. 사실, 나도 그게 좀 생소하긴 했다. 근데 나도 이 층간 소음이란 것이 사실 '소음'이 아니고 '진동'이라는 것이다. 우리집같이 1차 신도시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특히나 바닥재가 진동에 취약하기 때문에 충분히 아랫집에서 울리는 진동이 윗집에 올 수 있다고... 층간소음 전문가의 인터뷰 기사를 예로 들며 알아듣게 설명을 했다.
이 여사장님의 입에선 뭔가 조치를 취해준다든가,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그건 LH의 잘못이고, 사실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투였다.
나는 점점 화가 나서, 의자 다리에 소음 방지 고무마개를 설치 하시든지, 하다못해 다이소에 소음방지용 부직포를 사서 그걸 잘라 쓰면 된다고.. 까지 얘기를 하니,
관리실에 가서 우리집 면적을 확인한 후, 그 면적에 해당하는 부분만 처리를 하겠다고, 근데 어차피 소음문제는 아파트에선 어쩔 수 없는거라며, 자기가 알아보고 조치는 취하겠는데, 결과적으로 완벽하지 않더라고 감안하고 살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효.... 일단 결과가 나오고서 해야하는 말 아닌가..? 최선을 다해보고, 그 다음 결과를 보고 해야하는 말 아닌가... 어떻게든 자기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는 이 사장의 말투가 몹시 거슬렸으나, 더 이상 말이 통할 양반은 아니었다. 이쯤 마무 리 짓기로 했다.
얘기를 하다보니 구구절절 너무 길게 적었는데,
이 사건 말고도 위험하게 앞지르기를 하는 난폭차량때문에 깜짝 놀랬던 일도 있었다.
그리고 전에 있던 초소형 냉장고를 버리고, 드디어 적당한 크기의 냉장고를 주문했다.
냉장고가 있던 자리에 전자레인지니, 정수기니 이런 저런 것들이 있었어서, 마치 도미노처럼 물건들이 뒤로 물러나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했다.
게다가 집에 있던 행거를 제거하고 붙박이장을 설치하기 위해, 이러저리 알아보고, 실측 재고, 날짜 잡고, 가구 배치 정하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베트남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일주일 만에 돈 몇백을 썼더니, 급 마음이 불안해지고..
뒷처리 할 일도 많아지고, 여행 준비도 해야하고, 게다가 지인 웨딩영상 부탁받고, 제자들 경복궁 투어에, 교회에서도 언제쯤 복귀할지 물어보고...
벌린 일이 왜이렇게 많은 건지...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게 고역이었다. 눈은 떴지만 몸을 일으키긴 싫은 나날이 몇날 며칠...
그나마 기쁨이었던 베트남 태교여행이 무산되었다.
몇년 전 화제가 되었던 지카바이러스를 뒤늦게 깨닫고, 아이가 '소두증'에 걸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때문에 도저히 맘편히 갈 수가 없었다.
으어어어 ㅜㅜ 항공 취소비용 17만원..
여러모로 속이 쓰렸다.
갑자기 태교여행이고 뭐고, 기대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이 지역에선 이런 문제가, 저 지역에선 저런 위험이.. 모든 것이 다 잠재된 폭탄처럼 보였다.
나는 왜 이렇게 겁많고, 게으른, 생각만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일 벌려놓고 수습도 못하고 도망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너무나 괴로웠다.
아이를 잘 낳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몰려왔다.
'나는 분명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거야.'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고쳐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좋은 엄마의 조건으로 보이는 것들은 나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가끔씩 고향에 계신 엄마한테 전화가 오는데, 대화하는 것도 힘든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바꿔야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이야기를 꺼냈던거 같다.
그러자 엄마가 아이를 키우고 보니까 좋은 부모의 기준은 사실상 없는 거 같다고... 예전에 어떤 여자가 이혼을 했는데, 남편과 아주 작은 일로 다투게 된 일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 여자는 어릴 적에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그래서 다툼이 일어났을때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몰랐다고 한다.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지 하고 부모가 청사진을 그리고 나름대로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엄마는 각자가 다른거라고.. 각자가 가진 역량이 다 다르듯... 뭔가를 바꾸려고 하지말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키우면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이제 몸살을 넘어, 마음살(?)을 앓고 있다.
12주의 시간을 잘 버텨왔고, 앞으로의 여정도 많이 남아있다.
단순히 호르몬의 작용으로 치부하진 않을 생각이다.
엄마가 되기위해 아이를 품는 10개월의 과정에도 산통 못지않은 진통이 있는 거 같다. 필요한 준비 과정이겠지.
그러나 이 시간을 완벽하게 보내려하기 보다, 나를 그냥 흘려보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시간도, 금강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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