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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까미노(산티아고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마을 축제에서 춤춘 날 [신혼까미노 21화]

 

11일차 (2018.9.13 금)

 오늘은 캠핑장에서 실컷 자고, 9시나 되어서 출발했는데 엄청나게 쉬엄 쉬엄 걷다가 10키로 정도 지점에서 멈춰버렸다. 은십자가가 있는 San Andres성당이 유명하다는 villamayor이라는 작은 마을에 11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알베르게가 한 세군데 정도있는거 같은데 우리는 왠지 전망이 좋을 거 같은 Albergue Hogar Monjardin이라는 곳으로 갔다.
 전에 같은 숙소에 묵었던 독일인 아저씨가 엄청나게 땀을 흘리며 파라솔 밑 벤치에 앉아있었다. 아저씨는 우리보다 3-4키로 전에 있는 마을에서 왔고, 날이 더워 자기는 더이상은 못걷겠다고 했다. 예약을 했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아도 예약전화를 했었는데 온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다 했다고...문앞에서 붙여진 팻말을 보니 오픈은 2시인거 같았다. 아무래도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 유명한 은십자가나 볼 요량으로 성당에 가니, 돈을 넣은 상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 입장료인줄 알고 바로 나왔다. 
알고보니 상자에 써있는 단어는 'iluminacion', 조명이란 뜻이었다. 
조명을 켜는데 1유로를 받는다는 의미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조금 얄미운 생각에 들어가진 않고 문가에서 대충 훑어보고 나왔더랬다.

San Andres성당 첨탑


 동네를 둘러보니 진짜 뭐가 없다. 그러다가 귀여운 고양이 두마리 밥도 주고 하니까 벌써 한시간 남짓 남았다. 
 나는 너무 더워 경사가 진 곳에 있는 알베르게엔 못 올라가고, 오빠를 보냈다. 오빠가 돌아와 주인장이 말하길 알베르게에 묵고 싶으면 가방을 두고 2시에 오면 된다고 했다. 보니까 정문 앞에는 순례자들의 가방이 온 순서대로 쭉 나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일단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있는 바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샌드위치와 스페인식 볶음밥인 빠에야 뿐이었다. 둘다 먹기 싫었지만... 그나마 맛있어 보이는 빠에야 두개를 시켰다. 나는 해산물 냄새가 싫어 햄과 치즈가 들어간 빠에야, 오빠는 새우가 아주 맛나보이는 빠에야를 시켰다. 그러다가 옆 테이블에서 먹는 걸 보니, 빵도 4개나 주고, 양이 꽤 많아보였다. 그래서 나는 얼른 들어가 하나만 시켰다. 그런데 말도 잘 안통하고, 급한 마음에 처음에 고른 두개가 아닌 엉뚱한 무언가를 시켜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요즘은 그런 식이다. 짜증내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될대로 되라. 흐름에 맡겨 버리는 여유가 좀 생겼달까. 그런데 나온 음식은 약간 짜긴 했지만 상당히 맛있었다. 해산물 비린내도 별로 안났다. 특이하게 면으로된 빠에야인 피데우아란 음식이었다. 암튼 점심을 맛있게 먹고도 시간이 좀 남아, 카페 콘 라체(카페라떼)를 마셨다.
 그런데 빠에야 가격이 15유로, 거의 2만원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2인분이 계산된건지... 미스터리다.
  

아무튼 맛나게 먹었으니 만족스러웠고, 숙소로 와서 체크인을 했다. 여기 봉사자들은 다른 곳과 다르게 모두들  영어가 유창했다. 그리고 여기 묵는 순례자들의 분위기도 여느 곳과는 좀 달랐다. 엄청 떠들석하고 유쾌했다.  약간 우리네 아주머니들같은 느낌도 좀 있고 어딘지 친근했다. 우리는 6인실 2층침대 방을 배정받고, 일단 빨래부터 시작했다. 햇볕이 너무 좋아서 금방 마를거 같은 느낌이었다. 빨래통도 있고 화장실도 세군데나 있어서 기다리지 않고 금방 빨래를 끝냈다. 여기에는 '스피너'라고 부르는 탈수기가 있어서 힘도 들이지않고 물기를 완벽하게 제거했다. 게다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러다가 화장실 앞에 써진 문구를 발견했는데, 기도하고 싶을 경우 봉사자들에게 말하면 장소를 마련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이 알베르게에 대해서 조금 인터넷 서칭을 해보니,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저녁 8시 반에는 메디테이션 시간도 있었다. 
 

오늘은 너무 일찍 숙소에 들어왔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하다가 드디어 저녁시간인 6시 반이되었다. 여기는 다른 알베르게에 비해 저녁 시간이 굉장히 빠른 편이다. (스페인은 보통 8-9시가 저녁 시간) 종을 땡땡땡
울리며 저녁 먹으라고 알려주었다. 저녁 메뉴는 샐러리가 많이 들어간 샐러드와 멕스코식 또띠아, 치즈케잌이었다.
 전부 너무나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식사 중에 산티아고 근처에 산다는 세자매 아주머니들과 그 중 한분의 남편 이렇게 네명의 일행이 근처에 있었는데, 무슨 말만 하면 반응이 엄청 뜨거웠다. 처음에는 우리가 결혼한지 12일째 되었고, 이 여정이 허니문이란 말에, 그리고 세 자매 중에 한분의 헤어 스타일을 칭찬했는데 박수를 치고 어찌나 유쾌하게 반응하던지 보고 있자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처음 알베르게에 오게되었다는 한 여성 봉사자의 개인적인 소개와 식사 전 조심스런 기도가 우리를 한 공동체로 
묶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중간에 또 다른 봉사자가 나와, 컵에 숟가락을 땡땡땡 치며 또띠아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난 뒤, 디저트인 블루베리 치즈케잌을 밖으로 가져가 노을에 물든 성당을 바라보며 먹는데 맛도 분위기도 죽음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점심을 먹었던 바에서 마을 축제가 시작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바닥에 쏘는 폭죽도 간간이 터트려댔다.
 

우리 앞에는 미씨라는 미국에서 온 아주머니가 있었다. 어느 마을에서 출발했냐, 어디로 갈거냐,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실은 걷기만 한게 아니고, 벌써 3번이나 버스 타고 이동했다는 얘기를 해주니 아주 기뻐했다. 
 동지를 만난 거처럼. 별 깊은 얘길 하지 않았지만 뭔가 분위기가 편안하고 즐거웠다. 
 특히 이름 설명을 할 때는 우리의 라스트 네임이 좀 어렵기 때문에 살짝 말하기를 꺼리니까,  괜찮으니 리얼 네임을 말해보라고 했다. 막상 말하니 계속 되물으며 어려워했다. 그 때  내가 우리 패밀리 네임은 쉽다며, '오,'와 '노,' 그러니까 '오~노!'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주머니는 막 웃었다.
 

 그러다가 축제 음악이 점점 고조되고 우리는 그 장소로 가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50명 가량 보여있었다. 우리와 같이
방을 쓰던 스페인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는, 막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막춤은 아니었다. 뭔가 '차차' 같은 느낌. 
 나랑 오빠가 들썩거리니까 아주머니 한분이 춤을 권했고, 나는 그냥 몸을 맡겨버렸다. 팔을 막 이리 저리 돌리고
스텝을 밟느고 정신이 없었다. 재밌기도 했지만 음악이 빨리 끝났으면 했다. 나는 사실 몸치다.  
 그리고나서 8시 반, 메디테이션 시간이 왔다. 오늘은 축제가 있기 때문에 밖이 소란스러워 안에서 하는 듯했다.
카펫이 깔린 온돌방 같은데에 다같이 빙 둘러앉아 눈을 감고, ccm을 듣고 묵상을 했다. 축제 음악이 요란한데도 정말 집중이 잘 됐다. 저녁 식사 때, 반주로 포도주를 몇잔해서 살짝 알딸딸했는데,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생장에서부터 여기오기까지 과정들이 쭈욱 생각이 났다. 다시 한번 자문했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는 거지?' 답답한 물음이 아니었다.
 순례길 초반에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한탄이나 후회나 염려가 아니었다. 
 가만히 지나간 풍경을 떠올리니 우리 자신을 제외 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순례자로 대해주었던 거 같다.
그렇다면 순례자란게 도대체 뭐지? 우리는 산티아고 길대로 가지 않을 때도 많고, 버스를 애용하고 아주 개인주의적이며 더위와 불편함을 잘 못견딘다. 우리는 순례자라기 보단 관광객이 아닐까? 순례자는 엄청난 어려움을 감내해얄거 같은 느낌인데 말이다. 

근데 우린 우리 나름대로 어려움을 견뎌내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크게는 5개가 있다고 하지만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린 그 어떤 길도 걷고 있지 않다. 샛길로도 새고, 엉뚱한 길로도 하고, 지름길도 이용하고 버스나 택시도 탔기 때문이다. 오빠들 친구나 내 아는 지인은 사진을 보더니 '우리네 시골길 같구만 뭣하러 그 먼 곳까지 갔냐'고 이야길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여기 온 목적의 8할 정도가 풍경이었지만 지내보니 건축이나 자연은 이제 거기서 거기다. 우리 둘다 내향적
이기에 사람들과 접촉이 그리 많지 않지만 짧게 라도 가진 여러 만남들에서, 언어도 잘 되지 않는 곳에서 소통하려는
시도 속에서, 이 길이 빛이 나는 것 같다. 지내고보니 사람 사는 것, 느끼는 것 매 한가지다. 오빠가 어제 숙소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 만나 대화해보니 어떻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사람은 다 똑같다고. 우리가 이
길은 걷는 것은 모두가 답을 찾기 위해서다. 이 곳은 막힌 길이 아니라, 끝까지 계속해서 걸을 수 있는 곳이니까.
답이 나와 있으면서도 정답은 직접 풀어봐야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메디테이션을 끝내고 인도자는 커다란 열쇠를 하나 쥐어주면서 뭔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걸 나누고 싶다면
열쇠를 들고서 이야기 하고, 그렇지 않으면 옆사람에게 넘겨도 좋다고 했다 열쇠가 그냥 넘겨져서 나에게 왔다. 
 나는 영어로 이야기 하는게 쉽지 않지만 용기를 내어 더듬 더듬 한마디씩 했다 나는 이 길이 인생의 메뉴얼을 발견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신이 내게 갖고 있는 계획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거의 5분에 걸쳐 띄엄 띄엄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은 나를 천천히 기다려주고 내 말이 끝나자 땡큐 하고 말했다 어떤 아저씨는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내 용기를 칭찬하고 정말 하나님이 나를 통한 계획을 갖고 있고, 내게 좋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그리고 한국어판 요한복음을 선물해주었다. 사람들이 축복의 말이 해주고 방에 들어와 이 글을 쓴다.
조금 전 요란했던 폭죽 소리는 잦아들었고 이제 코고는 소리만 곳곳에 들려온다. 내일의 길을 위해 어서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