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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까미노(산티아고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 몸과 마음이 약해질 무렵에 만난 작은 스페인 하숙-비스카렛 신혼까미노 10화

[피레네산맥을 넘고 론세스바예스 다음 마을에서 하루 묵었다.]

새벽 6시 좀 넘어서 눈이 떠졌는데, 오빠가 안보인다

또 어딘가에서 노트북을 쓰고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테이블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역시나 1층 야외 테라스에 패딩을 입고 구부정하게 타자를 치고 앉아있는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되서 3시쯤 꼭 깨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거 같았다

 사람들은 슬슬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다들 후다닥 준비해서 나갔다전날 피레네에서 얻은 근육통이 극심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동키를 이용해서 옆마을에 가던지, 여기서 좀 쉬어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잘 꺼내지도 못했고별 상의도 없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들 빠져나가는 통에 우리도 어서 길을 나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빠는 짐이 너무 많다며 좀 버리라고 했고, 나는 짐을 싸다가 정작 필요한 물건이 보이지 않아 급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신라면, 소독약( 이 두개는 버리고 후회함) 베개, 수건, 미스트, 크림 등을 버리기 시작했다

 짐이 은근히 가벼워졌고 이제길을 나설 준비가 된 거 같았다

아침도 먹지 않고 길을 가는데, 한 아저씨가 그 길이 아니라며 자기 말로 뭐라 뭐라 알려주어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참을 인터넷으로 지도를 들여다보고, 표지판도 살펴보고 하면서 갈 길을 정했다

배가 고프고, 분위기가 험악하진 않았지만 그닥 좋지도 않았던거 같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큰 일 날 거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다행이 노란 화살표가 보이는 게, 괘도에 제대로 들어와있구나 싶었다

아침을 먹을 만한 장소를 찾는데 영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좀 모여있는 한 바를 발견했다

레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스페인 청년이 혼자서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옆 테이블에 있는 아주머니들이 먹는 메뉴를 따라하려고 했는데 막상 메뉴에는 그놈의(?) 하몽이 들어간 토스트 밖에 없었다. 옆에 아주머니들은 잼을 바른 토스트를 먹고 있었는데...

 바에 손님은 많은데 일하는 사람은 하나라 좀처럼 우리가 주문할 차례가 오지 않았다

아뿔싸

 게다가 이 청년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거 같았다. 우린 부랴 부랴 메뉴판에 있는 단어들을 검색해보고, 가까스로 뭔가를 주문했다

그런데 아직 음식 준비가 안된다고 해서 치토스와 하몽 토스트, 그리고 카페콘레체(라떼)를 주문했다.

하몽을 옆으로 치우고 토스트만 먹었다. 의외로 커피는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가다가 상점이 있어 거기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무것도 첨가 안된 바게트 하나와 초콜렛을 샀다

 오빠가 물도 사자고 했지만 나는 충분할 거 같은 생각에 말렸다.

 상점을 나와서 바게트를 가방에 넣으려고 앞에 벤치에 앉았다

그 때 오빠는 어딘지 퉁명스런 말투로, 내가 물을 못사게 해서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내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순례길은 그저 도보가 되었다.

 걷기 위한 길, 걸어야만 하는 길. 먼 길이 되어만 갔다

서로에 대한 못마땅함이 극에 달했을 때 우리는 어느 마을에 다다랐다.

 그 곳에서 맛있는 스패니쉬 오믈렛과 샐러드를 맛있게 먹고, 그 마을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마을의 이름은 Viscarret(비스카렛), 식료품 점 한 곳과 식당 둘, 성당 하나가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작지만 정감가는 그곳에서 우리는 둘만 쓸 수 있는 방을 잡았다. 숙소는 굉장히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우리는 짐을 풀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서운함과 미안함을 토로하였다.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풀렸다.

그곳에 있는 왠만한 건물들은 죄다 100년이 넘었고 중세 시대에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고풍스러웠다

정말 너무나 작아서 한번 와보라고 추천하기도 어려운 곳이지만 나는 그곳에서의 기억들을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오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온전히 느껴졌다.

  저녁 6, 오빠가 제일 잠이 오는 시간, 시차 적응이 아직 덜 되었다는 증거다. 가까스로 잠을 깨우기 위해 1층 식당으로 내려가 컴퓨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내일 묵을 숙소를 알아보았다.

 지난번 첫 알베르게에서 만실이 되어 다른 마을로 갔던 기억때문에 내 마음이 더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왠만한 사설 알베르게는 다 예약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근데 나역시 잠이 너무나 오는 것이었다

예약할만한 숙소만 열심히 알아보다가 결국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