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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까미노(산티아고순례길)

산티아고순례길의 버스여행자 [신혼까미노 16화]

 

어제부터 다리가 너무 아파, 관광의 날로 지정한 오늘.

이곳은 팜플로냐. 그러나 우리는 신혼여행에서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다. 각자 시간을 보낸 후에 만난 우리.

약간의 서먹함을 뒤로 하고 기분 전환겸 kfc에 갔다. 

노란 화살표를 벗어난 순례자 차림의 우리는 현지인들의 시선을 자꾸만 빼았았다. 점잖게 양복을 빼입은 한 노신사는 급기야 너희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니냐고 걱정해주었다.

결국 도착한 문명의 이기, 패스트푸드점!! 타워 버거 세트를 시켜서 먹었는데 어쩜 그렇게 맛있는지, 배터지게 잘 먹었다. 화장실에 가 이도 닦고, 무릎 보호대도 다시 차고 버스 정류장으로 행했다. 

사실 그 정류장은 kfc에서 5키로 가량 떨어져있다. 사실 일부로 그렇게 정했다. 조금이라도 걸어보려고. 그런데 짧은 길을 걷는데도 힘든건 어제와 비슷했다. 

왜냐하면 태양빛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걸었던 시간은 2시부터 4시, 태양빛이 가장 강렬할 때였다. 순례자들이 왜 그렇게 일찍 출발하는 지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오전에 날 좋을 때 걷고, 태양열이 뜨거울때는 쉬려고 했던게 아닐까. 

아뿔싸. 문제가 또 하나 생겼다. 

우리가 가려던 곳 전에 한 군데 더 들리려고 예약했던 숙소가 있었던 것이다. 예정지보다 5키로 가량 더 와버린 것이다. 결국 버스를 타고 5키로 가량 더 떨어진 곳에 들려 택시를 타기로 했다. bar에 들어가 물을 사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택시를 탈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직접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불러주었다. 아주머니 친구분이 벤츠 택시를 몰고와 우리를 태워주었다. 10유로를 주었다.
 예약 취소금액이 방값이었기에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이 곳은 최고의 알베르게가 있었다. 거기에는 수영장과 탁구장, 게다가 하얀 의자가 놓여진 잔디밭이 있어서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쐬며 멍때리기 최적의 장소였다. 그냥 지나쳤으면 아쉬울 정도로 손에 꼽히는 알베르게였다. 

El Jardin De Muruzabal 알베르게 입구


 그곳에서 만난 한 한국인 아주머니도 추천을 받아 왔다고 했다. 저녁 시간은 정말 영화같았다. 테라스에 앉아서 먹는 순례자 메뉴는 맛도 너무나 좋았다. 

우리 앞에는 부부처럼 보이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있었다. 남자가 베지테리언이어서 파스타가 나왔을 때 고기가 들었는지를 확인했다.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세심하게 다른 음식들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베르게 주인에게 물어봤다. 얘기를 듣다보니 둘은 1000키로 이상 떨어진 곳에 따로 산다고 한다. 

알고보니 부부가 아니라 부녀 관계였다. 얘기를 같이 듣고 있던 한국인 아주머니도 함께 미안해하며 웃었다. 그러다가 내가 주로 몇시에 식사를 하는지 물어보다가 4시에 일 마치고 점심인가 저녁인가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근로시간이
굉장히 짧은 것이 참 부러웠다. 역으로 그들은 한국인들이 굉장히 오랫동안 일한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보니, 배가 잔뜩 부르게 되었고 (참고로 여기 나바라 지역은 피망 요리가 진짜 맛있다)
디저트를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요거트를 시켰고, 대부분은 아이스크림이나 오렌지를 시켰다. 아이스크림이 먼저
나왔는데 엄청 먹음직스러웠다. 

그리고 조금 뒤 요거트가 나왔는데, 갑자기 서빙하던 알베르게 주인장 아저씨가 '아,숟갈?'하면서 요거트와 숟가락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오? 숟갈??'하니까, 그쪽에서도 놀라며 '숟깔??'하는 것이었다.  한국사람들은 다들 놀라며 웃었고, 나도 막 엄지 척을 하며 그의 언어 실력을 칭찬하였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숟갈이  슈가, 즉 설탕이라고 말해주었다. 알고보니 스페인어로 설탕은 '아수깔'이었다. 요거트에 설탕 쳐서 먹을거냐는 이야기였는데, 웃음 포인트가 되어 즐겁게 웃었다. 

이따금씩 정적이 있기도 했지만 그냥 쉼표처럼 느껴졌다.

조금 뒤 저쪽 편에서는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순례길에서는 앞선 순례자들이 표시해 놓은 노란 화살표가 있어 길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지도를 보기도 하고 미리 숙소를 예약하기도 한다. 어쩌면 순례길의 의미가 조금 퇴색되버린 것이 아닐까. 자신이 스마트 폰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염려하는 벨기에인의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됐다. 
 한 한국인 아저씨는 아주 쉬운 영어로, 구글 맵을 보면서 자신이 바른 길에 왔구나 안심하는 자신을 표현했는데 꼭 우리 모습과 똑같았다. 다들 똑같구나 싶었다. 
 배부르게 방으로 돌아와 뜨거운 밤을 보내려 했으나 방음이 너무나 안되는 바람에 조심하기로 했다. 노을도 굉장히 아름답고 소수의 사람들과 친근한 분위기가 마음을 한결 놓이게 하는 편안한 밤이었다.

 오늘도 완벽한 하루였다. 완벽이란 단어는 이제 여기와서 뜻이 좀 바뀐 듯 하다.